summer

말레이시아 인턴십 합격소식을 듣고 일주일 정도 무료한 시간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형을 만났다. 눈깜빡 할 사이에 이주가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집 밖을 나오지 않고 하루가 넘는 시간 동안 붙어서 얘기를 나누었다. 카페를 가도 함께 였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 친구를 만나도 같이 만났다. 인턴십 때문에 시작된 중간고사를 대체할 사전고사 시험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서울에 올라가 친구들에게 형을 소개시켜주었고 우리는 영화같은 시간을 보냈다.

망원동에 있는 초한초마에서 중국음식을 먹었고 형은 역대급 짬뽕맛이라며 극찬했다.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이뻐보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꼈다. 노을이 저물어갈 시간에 집까지 걸어가는 길에 사이좋게 슬리퍼를 사고, 집에서 또 쉬다가, 한강공원에 나가 맥주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내 얘기를 해주었더니 뜻하지 않게 형의 지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음이 아프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그냥 내 앞에 이렇게 온전히 다가와준 형이 너무나 고마웠다. 맥주 한캔 조금 넘게 마신 형이 적당히 취해버려서 카카오택시로 중앙대를 찍는 바람에 도착지가 바뀔뻔 했지만, 마침 자신이 신림동 쪽에 가려했다고 신나서 얘기하는 기사님의 얘기를 듣고 집에 무사히 웃으면서 돌아왔다.

둘째 날은 이태원 우사단로를 함께 손잡고 걸을 수 있었다. 햇빛서점에 가보려 했지만 굳게 닫힌 문을 열 수 없었고,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지만 굳이 다시 재방문 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보다 내외부가 흥미로워 보이지 않았다.) 둘 다 급 피로해져서 택시를 타고 홍대에 돌아갔다. 누나의 예전집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무던히 지나가는데 형이 갑자기 팔을 잡아당겼다. 뒤로 몇발자국 가보니 내앞에 블랙핑크 리사가 있었다. (흥분해서 방방 뛰던 형이 내심 창피하기도 했지만 그 귀여운 표정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카페에서 형이 캘리그라피로 한강에서 했던 말을 적어 주었다. "하늘을 보면서 널 떠올려..." ㅁㅈ가 도착해서 셋이서 즐거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어려운 병원얘기들도 형은 끄덕끄덕 맞장구 치며 잘 들어주는게 참 기특했다. ㅁㅈ도 참 편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며 고개를 으례 끄덕였다. 뒤늦게 도착한 ㄱㅇ이와 노루목에 가서 신나게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뜻하지 않게 친구들이 먼저 겨울이 되면 온천여행을 다 같이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마치 오랜연애를 기정사실화 시켜준 것과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손을 잡아준 형이 너무 고맙고 좋았다.

인턴십 병원에 제출해야 할 검진결과를 위해 원대병원에 오후에 가야해서 아침일찍 형과 KTX를 타고 익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둘 다 피곤해서 잠을 쿨쿨 자며 내려왔다. 진료를 보고 피를 뽑고 X-ray를 찍는 동안 형은 따라다니면서 내내 기다려주었다. 많이 피곤했을텐데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포장해와서 자취방에서 둘이 우걱우걱 먹어대고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형이 날 떠나가는 내용이었나보다. 꿈에서 깨어 옆에 형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꿈을 꾸었다고, 형이 떠나가서 너무 무서웠다고, 지금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형에게 몇 마디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줄줄 나왔다.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형은 조금 당황해서 울지 말라고 하는데, 꿈 때문인가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다. 울면서 형에게 말했다.

"오늘 병원에서 피 뽑고 나오는데 형이 날 기다려주는 모습을 보는데 그게 너무 고마운거야. 생각해보면 스무살 이후로는 항상 혼자였던거 같아. 무슨 일을 해야하고, 고민이 있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냥 항상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견뎌왔던 것 같아. 나는 그게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사실 혼자 그렇게 사는게 당연한건데 말야. 형이 나한테 온 후로 그게 당연한게 아니게 된거 같아. 난 그냥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그렇게 별거 아닌데 그렇게 기다려주는 형이 너무 고마워서... 형이 떠나면 견딜 수가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나봐."

그렇게 말을 마치고도 눈물과 감정의 동요가 쉽게 사그라들지가 않았다. 형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며 눈물을 조금 흘렸다. 전역 이후로는 항상 그랬다. 어떤 일이든 그 누군가에게든 기대는 덜 하고, 적당한 감정과 이성을 유지하고, 혼자있는게 편하다고 그렇게 버텨왔다. 그런데 형이 나에게 너무나 많은 믿음과 확고한 답을 주었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람에 대한 불신 그리고 적당한 감정선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나는 이제 형에 대한 믿음이 너무나 커진 상태이다.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약속도 진심으로 용기내어 말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절절하게 내뱉는 것이 이리도 좋아져버릴 줄은 나도 몰랐다.

입버릇처럼 친구들에게 나는 연애말고 결혼이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너무나 잘 맞는 사람을 지금 만나버린게 아닌가 아직도 두렵기는 하다. 이 사람과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을지... 혹여 내가 싫증나지는 않을지... 나에게 상처 받고 토라져 버릴지... 너무나 많은 걱정이 있지만 그래도 그 어느때보다 잘 맞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든다. 형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많은 것을 함께 했으면 좋겠고, 날 계속 좋아해줬으면 좋겠고, 다음 해의 여름도 같이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 시험을 마무리하고 캐리어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형은 피곤했는지 옆에서 잠이 들었고 나는 이렇게 마음이 너무나 무거워져 글로 그와의 추억을 잊혀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담아본다. 때때로 그냥 얘기를 하다가 형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날 정도로 감정이 격해진다. 지금도 그가 자는 모습을 보는데 너무나도 눈물이 난다. 행복해서인지, 형이 걱정되서 인지, 내가 해외로 4달간 떠나게되서 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형이랑 있으면 내 감정이 중학생 아이처럼 말랑말랑해져서 벌건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인상깊었던 대사."내가 원하는 거는 그냥 나답게 사는거야.흔들리지 않고, 무슨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살고 싶어. 그러기로 했어.""사랑을 찾고 있는 거니?""사랑이 어디 있어요 보이질 않는데.""사랑을 봐야 어디가서 찾기라도 하죠.""다 자격없어요. 다 비겁하고 다 각자에 만족하고 살고 다 추한짓 하면서 그게 좋다고그러고 살고있어요. 다 사랑받을 자격 ... » 내용보기

퀴어퍼레이드 2017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 라는 슬로건으로 2017년 퀴어퍼레이드 행사가 무사히 끝났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번째로 방문하게 되었다. 급하게 퍼레이드만 돌고 왔던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부스를 하나하나 돌고 공연도 보면서 모든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비가 무지막지하게 내리는 바람에 우비를 입으랴 우산을 쓰랴 고생했지만 그럼에도 불... » 내용보기

타로

군대가기 직전이었던가. 객사에서 타로를 봤었다. 그 때는 그다지 궁금한 것도 걱정되는 일도 없어서 진로에 대해서 물어봤었다. 황금, 왕이라던지 좋은 카드만 뽑혀서 간호쪽으로 간다면 승승장구할 거라는 답을 받았다. 긍정적인 미래에 대해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고 오히려 찜찜해 하며 타로에 대한 불신만 키워갔다.시험보기 일주일 전. 그렇게나 말도안되는... » 내용보기

배드로맨스

그냥 길을 걷다가도 욕이 나온다. 아무생각이 없다가도 문득 떠올라서 화가 치밀이 오른다.여러 친구들에게 그 놈 욕을 해달라고, 내가 잘못한게 없지 않냐고 하소연을 한다. 기억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더 많이 좋아했던 탓일까. 정말 더 좋아했던걸까. 억울하다. 나쁜새끼. 그래도 난 후회없을만큼 노력하고 잘해주고 사랑했다.시험을 어렵사리? 사실은... » 내용보기